결혼할 여자. (픽션)

바람둥이도 결혼할 상대는 자신만을 바라볼 것 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남자들의 간사함. 과연 남자들이 결혼할 여자로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결혼할 여자와 데리고 놀기만 할 여자. 남자들의 속마음은? 가까운 지인인 안군의 이야기에서 그 단면을 한 번 바라보도록 하자.

안군은 전형적인 바람둥이다. 그는 프로급이다. 그의 바람기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으며 그의 처신은 아주 완벽하다. 최근 그는 사귀던 여자친구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서 한 여자를 뺏어왔다. 바람둥이지만 안군에게는 항상 사귀는 한 명의 애인이 있다. 그것이 그의 철칙. 안군은 언제나 가능성 있는 여자에게 대쉬한다. 가능성이 없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친구로 지낸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아쉬울 것이 없다. 눈을 조금만 낮추면 안군의 수준에서 꼬실 수 있는 여자는 너무나 많다.

고로 안군의 주위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 하지만 안군이 무작정 나쁜 생각으로 여자들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다. 안군이 다른 여자를 찾을 때는 지금의 여자에게서 만족하지 못할 때로 보통 애인이 못살게 굴 때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곁에 없을 때이다. 안군은 외로움을 잘 탄다. 안군은 누군가 항상 곁에 있기를 바란다.

보통 대략 안군에게는 한 지역에서 4~5명 정도의 친하게 지내는 여자가 있다.

나는 안군과 술잔을 기울이며 최근 1년 동안 썸씽이 있었던 여자들에 대한 안군의 속마음을 물었다.

A양.
A양은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으며 나이가 안군보다 어리다. A양은 돈 많은 집의 딸이고 외모는 중상이다. 안군은 항상 A양의 몸매를 뚱뚱하진 않으나 통짜라고 아쉬워했지만 A양의 말투가 귀엽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A양은 가슴이 크다. 한동안 안군은 A양에게 정착하는 듯했다. 그녀는 부잣집 딸 답게 안군의 생일 선물로 비싼 향수와 옷을 선물했다. 그러나 안군은 그녀에게 끝내 정착하지 못했다. 안군의 가벼운 장난에 A양이 화를 냈는데 그 정도가 안군의 생각보다 지나쳤던 것. A양은 화를 낼 때 할말 못할말을 다 하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안군은 고개를 저었다. A양은 아니라며. 또한 A양에게는 '아는 오빠'가 많다. 학교를 거닐다가 보는 남자들마다 다 가르릉 거리며 애교있게 오빠를 연발하는 그녀. 싸보인다.. 아는 남자가 많은 여자는 위험한 법. 하지만 안군은 아직도 A양에게 즐겁게 통화를 하고 연락을 하며, 가끔 만난다. A양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겼을지라도. 왜냐고? 안군은 천성적으로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바람둥이기 때문이다. 아는 남자가 많던 성격이 더럽던 가볍게 만나는데 그런 것은 아무 이유가 되지 못한다.

B양.
B양은 같은 과 후배다. B양은 가슴은 작은 편이지만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고 조금은 소극적인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키가 큰 편이고 얼굴은 이쁘지만 피부가 보통이며 머리가 작지 않은 사이즈다. 한동안 안군은  B양에게 정착했다. 하지만 그 때는 불륜이었다. 안군에게는 애인이 있었던 것. 안군은 멀리 있는 애인과 B양 사이에서 갈등했다. B양은 안군에게 애인이 있는 줄 알면서도 안군을 사랑하였고 사랑해주었다. 안군은 그것에 감명했다. B양은 오로지 안군 일편단심이었던 것. B양은 급기야 안군을 자취방으로 끌여들였다. 그리고 몸을 주어 안군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안군은 둘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다. B양도 고통스러웠다. 가끔 술을 마시곤 안군에게 늦은 밤에 전화를 하여 심정을 토로했다. 안군은 결단을 해야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결론은 원래 사귀고 있던 애인이었다. 이유는 'B양이 얼굴의 조금만 더 이뻤어도'였다.

C양.
C양은 약간 4차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4차원 개그를 사용하는 안군과 비슷한면이 있긴 했다. 물론 그런 면이 재미있긴 했지만 안군이 C양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을 잘 챙겨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C양은 친하게 지내거나 아는 남자가 별로 없다는 것도.특히 C양은 요리를 잘했다. 안군은 가끔 C양을 집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얻어 먹곤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안군은 나에게 항상 결혼은 C양 같은 여자와 해야겠다로 말했다. 하지만 사귀지는 않았다. 안군 자신이 4차원이라고 해서 4차원인 그녀와 결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외모상 C양은 준수한 편이었으나 안군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안군은 C양에게서 성욕을 느끼지 못한 것. 결국 C양은 안군의 친구로 남았다.

D양.
D양은 안군의 직장 동료이다. D양은 아주 빼어난 용모를 지녔다. 그녀는 헬스를 해서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서른이 넘는 나이를 가지고 있었고 안군은 그에 비해에 많이 어렸다. D양은 결혼을 준비할 나이였던 것. 그러나 남녀라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타오를 때가 있다. 그들이 그랬다. 회식이 끝나고 그들은 이미 눈이 맞았다. 그 때 당시에 안군은 심각하게 사귈 것을 고려했다. 나이만 제외하면 그녀의 조건은 완벽했다. 특히 탄탄한 몸매와 이쁜 얼굴은 두고두고 안군이 나에게 자랑한 것. 그녀와 그는 몇 번의 관계를 가졌다. 섹스는 남자를 끌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때도 이미 안군에게는 장거리 애인이 있었다. D양은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안군에게 물었고 안군은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연애의 무게가 달랐다.

E양.
E양은 뚱뚱하고 못생겼다. 하지만 안군은 E양과 자주 만남을 가졌다. 안군은 여자의 외모를 잘 따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만 골라서 만나지는 않는다. 그는 여자를 만나는 것 자체를 즐긴다. 나와는 다른 타입니다. 안군은 E양과 밥먹고 게임하는 것을 즐겼다. E양은 점점 안군에게 빠져들어 선물 공세를 펼쳤지만 안군은 E양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E양은 짝사랑으로 끝났다.

F양.
F양은 이전의 애인을 버리고 새로 사귀게된 애인이다. F양은 몸매가 빼어나지는 않지만 준수하다. 얼굴은 이쁜 편이다. 키는 조금 작은 편. F양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안군은 F양의 예술성에 반했다. 별 생각없이 그저 가까이 지내던 어느날 그녀의 작업실에서 그녀의 작품을 보고는 반해버렸던 것. 그리고 그 둘은 아직까지 잘 사귀고 있다. 하지만 F양이 가끔 연락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안군은 그들을 경계하는 중이다.

그럼 '박군'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by 소담 | 2008/08/20 12:07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영화) 넬(Nell)

(Nell, 1994)
드라마 | 1995.07.15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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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죠

여러분에겐 중요한 것이 있죠

당신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구요

하지만 마음을 보지 않죠

여러분은 평온을 갈망하고 있어요

난 짧은 인생을 살아왔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구요

모두 다 떠나버릴거예요

모두가 떠나버렸거든요

넬은 외로워요

넬을 위해 걱정하지 말아요

날 위해 울지마세요

난 당신보다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아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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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든 이별이든 인연의 끝, 홀로 남음에는 언제나 외로움이 그리고 그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영화 '넬'은 락그룹 '넬'의 밴드명이기도 해서 유명한데 영화를 보면 주인공 넬의 캐릭터와 락그룹 넬의 정서가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정상(?) 또는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아이엠쌤(I'm Sam)' 등 과 같은 영화와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영화 넬.

 

숲 속에서 같이 살았던 노모의 죽음에 대한 아픔과 어릴 적 쌍둥이 자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넬.

 

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언어 사용이 불가능한 어머니에게서 말과 생활양식을 배운 탓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괴기스러운 행동까지 보이는 넬.

 

문명과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은 숲속의 강가 오두막에서 살아왔던 넬.

 

성폭행을 당했던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으로 인해 실체도 모르는 성폭행의 두려움으로 낮에는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넬.

 

하지만 어머니가 죽게되고 넬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어머니는 넬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야생녀'라는 명목으로 넬은 '늑대소녀'와 다름 없이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의사인 제리와 장애 아동 치료사인 폴라가 넬에게 최초로 접근한다. 제리와 폴라는 넬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넬이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넬과 함께하며 도우려고 한다. 그들은 넬을 실험 대상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에게서 넬을 보호해 나가며 넬의 언어를 배웠고 넬과 교감하였다.

 
제리와 폴라는 알게 되었다.

 

넬이 그토록 되뇌던 말 '메이'는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죽은 쌍둥이 자매라는 것. 그리고 슬퍼하는 상대를 위로하는 말 '채커페이' 이상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행동들은 모두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외로웠던 것. 그리워했던 것. 두려웠던 것.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과격한 언행만 보고 그녀가 미친 야생녀라고 판단한다.

 

한편, 제리와 폴라 또한 어릴 적에 외로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외동아들, 부모의 이혼, 그리고 자신의 이혼.

 

제리와 폴라와 넬은 서로를 위로 한다. 폴라가 과거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감정이 북받쳐 올라 뛰쳐나왔을 때 넬은 폴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넬은 그저 야생녀가 아니다.

 
그러나 언론과 학계는 매정하다. 언론은 헬리콥터를 동원해 취재를 시도했고 학계에서는 연구를 해야한다며 다그친다. 넬의 미래를 정하는 재판의 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

 
그동안 제리와 폴라는 넬이 사용하는 많은 언어들을 알아내었고 넬도 문명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언론의 취재 시도 등으로 넬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포에 질렸고 제리와 폴라는 급하게 병원으로 넬을 데려왔지만 급박한 상황에 놀란 넬은 소통을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넬의 변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넬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연구하려고 했고 그에 제리는 분개한다.

 

"당신은 당신의 환자인 넬에 대해 지나치게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넬은 나의 환자가 아니오! 나는.. 넬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소!"

 

그 때 멍한 듯, 공포에 질린 듯, 어지러운 듯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넬이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홀로 살아왔어요.

그 아픔과 눈물을 주님이 달래주십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죠

여러분에겐 중요한 것이 있죠

당신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구요

하지만 마음을 보지 않죠

여러분은 평온을 갈망하고 있어요

난 짧은 인생을 살아왔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구요

모두 다 떠나버릴거예요

모두가 떠나버렸거든요

넬은 외로워요

넬을 위해 걱정하지 말아요

날 위해 울지마세요

난 당신보다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아요

괜찮아요?

 

-

 

괜찮아요? 당신, 괜찮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바라봅니까? 죽음이든 이별이든 인연의 끝, 홀로 남음에는 언제나 외로움이 그리고 그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혹시 당신은 상처로 인해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지는 않나요. 넬처럼 공포와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우리를 위로해주고 우리보다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즐겁고 행복한 척, 강한 척, 그렇게 정상적으로 살아가면서 속으로는 곪아터지고 있진 않나요. 아무도, 믿지 못하고 있진 않나요.

 
넬은 외롭습니다. 하지만 넬은 말하죠.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난 당신 보다 외롭거나 슬프지 않아요. 괜찮아요.

by 소담 | 2008/05/18 20:28 | 작품을 감상하고 | 트랙백 | 덧글(0)

[작품론 발표문 3학년 7모둠] 소설이란 무엇인가?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이란 무엇인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바탕으로


1.작품 소개 및 작품에 대한 감상

1) 작품에 대하여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심정으로,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한 폭의 수채화와 한편의 활동사진이 교차되듯 맑고도 진실 되게 그려낸 소설이다.

 그런 만큼 이미 발표된 박완서의 여러 소설 속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나거나 소설적으로 변용되어 나타난 자전적 요소들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작가의 가족관계, 즉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와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30년대 개풍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 노닐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자만이, 그것도 풍부한 감성으로 순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박완서라야만 가능한 문체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으며,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이 어떤 자료보다도 자상하고 정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또한 1950년대 전쟁으로 무참하게 깨져버린 가족의 단란함, 그렇게 되기까지 엎치고 덮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로서 주인공이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매듭짓는 소설의 말미는 박완서가 왜 소설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남자네 집>

 나이를 먹은 주인공이 후배의 집 구경을 갔다가 50년 전 첫사랑인 그 남자가 살았던 기와집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났지만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 있는 기와집은 그 남자에 대한 기억으로 주인공을 이끌어간다. 50년 전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인 그 남자네가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기와집으로 이사를 오고, 겨울 저녁 퇴근하는 전차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 집안의 안부를 물으면서 그 남자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그들은 1950년대 폐허의 서울 거리를 누비며 구슬처럼 빛나는 겨울을 보내지만 여러 가지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은행원인 민호와의 결혼을 결심하며 그 남자에게 이별을 선언하는데... 미시적 리얼리즘의 농밀한 압축과 일상과 일탈에 대한 팽팽한 대비, 특유의 입심으로 풀어낸 감칠맛 나는 이야기를 통해 순수한 첫사랑에 대한 지나간 기억을 되살려 주는 소설이다. 나이를 먹은 주인공이 첫사랑을 회상한다는 설정,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는 점(당시 박완서 나이 20대)과 더불어 작품속의 공간적 배경이 작가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2)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하 『그 많던 싱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소감2)

 - 왜 박완서 소설에 감동하고 재미있어 하는가.

  #어디까지가 그의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각색인지 다소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말처럼 날것 그대로 '자신을 바로 보는 일처럼 용기'를 요구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지어진

   기억을 이어주기 위해 상상력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지만 대단한 작업임을 인정한다.

  #시대상은 다르지만 작가는 나와 참 비슷한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

  #난 그녀를 좋게 생각한다. 왜 좋아한다가 아니라 좋게 생각한다고 이야기 하냐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 그녀자신은 모르는 이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자서전 같은데 작가는 소설이란다.


3) 체험을 바탕으로 그 경험과 기억에 최대한 밀착한 소설.

 『그 많던 싱아..』에 대한 감상에서 독자들은 작품이 작가의 체험․정신과 작품이 밀접하게 관련 있음

  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와 관련된 감상평을 보이고 있다.

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각색인가.

 - 소설에 드러난 경험과 기억에서 누군가(작가)의 삶을 엿보고 싶은 원초적 욕구와 그에 대한 재미.

② 기억력에 대한 극찬.

 -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이토록 생생하고 세세하면서도 장황하게 기억력에 의존해

   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독자들은 감탄한다.

③ 소설 속에 느끼는 공감대를 작중인물이 아니라 작가와 형성한다.

 - 따라서 작중인물이 아니라 작가와 비슷한 성장배경을 가졌다는 공감대 형성에 의한 감동을 느끼고

   있으며 작품 외적으로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도 소설을 읽고 단도직입적으로 작가를 좋게 생각

   한다고 말하고 있다.

④ 자서전인가? 소설인가?

 - 작품이나 작중인물과 작가의 거리가 너무 밀접하므로 자서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2. 박완서가 말하는 자신의 소설

- 독자들은 박완서의 소설에서 감동을 느끼고 있지만 과연 그녀의 소설이 소설인가 자서전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해 박완서는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

 『그 많던 싱아..』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그녀는 『그 많던 싱아..』를 두고 ‘자화상을 그리듯이

  쓴 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중략) 이번에는 있는 재료만 가지고 거기 맞춰 집을 짓듯이 기억을 꾸미거나 다듬는 짓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를 해 보았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집의 규모와 균형을 위해선 기억의 더미로부터 취사선택은 불가피했고, 지워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박완서는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도 자신의 글이 소설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이어진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글이 소설임을 밝히고 있다. 즉, 그녀는 『그 많던 싱아..』를 분명한 소설로 취급하고 있으며(책 표지에도 박완서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단지 『그 많던 싱아..』를 쓸 때는 다른 소설보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중시하여 소설적 꾸밈을 최대한 자제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최대한 자제했다는 말이 반증하듯 순전히 기억력에 의지했음에도 소설적 꾸밈을 피할 수는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작품의 인물구성이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았을 때 자서전의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 남자네 집』의 경우, 한 인터뷰3)에서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서울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 간 후배가 있어 3년 전쯤 그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며 "워낙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 옛집 터는 찾을 수 없었지만 '그 남자네 집'이 있던 자리는 알아볼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는 것이다. 자서전의 의혹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박완서는 "현보라는 인물의 모델이 있긴 하다"면서도 "이 글에 자전성이 있다고 말할이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박완서의 작품은 작품과 작가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과연 어떤 부분이 작가의 삶이며 어떤 부분은 허구의 삶인가 하는 물음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박완서의 작품이 과연 소설인가 자서전인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많던 싱아..』에서 그 논란은 극에 달한다.

 박완서의 작품이 이러한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의 책은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고 양장본이 나오는 등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글에 감동하고 찬사를 보낸다.


3. 김윤식이 말하는 박완서 소설의 위상

 『그 많던 싱아..』의 뒷부분에 실린 ‘기억과 묘사’라는 비평문에서 김윤식은 『그 많던 싱아..』를 극찬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근거로 그녀의 작품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을까.

 김윤식은 작가가 ‘이 글을 소설이라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흡사 남의 말 하듯 해놓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비록 겸손하게 말했지만, 소설이라는 것은 ‘자기 생활이란 집을 쳐부수고 그 돌조각으로 만든 새로운 집’4)이라는 상식에 벗어난 글쓰기를 했다는 것을, 즉 종래의 상실적인 소설관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에 비해 자신의 소설은 별난 것이고 그래서 ‘소설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상식적인 소설관을 벗어나려했다는 점에서 먼저 이 소설이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그는 언급하고 있다. 좋은 작품이란 이전의 규율을 깨면서도 소설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며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박완서의 소설은 이러한 점에서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윤식이 두 번째로 말하는 것은 『그 많던 싱아..』가 소설의 본질에 근접하려는 순수혈통 소설 즉, 순종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소설이 과거 서사시(신화) 이후에 나와 서사시의 자리를 대신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사시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미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서사시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로 당시에 신화라는 것은 지금의 소설과는 달리 절대적인 세계였다. 즉, 신화라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의 세계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가 본질이 되는 세계였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임이 분명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신화는 종교 이상의 무엇이었으며 신화는 신화끼리 서로 연결되어 순환되었다. 사람들은 신을 믿었으며 따라서 신은 존재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신이거나 신과 가까운 인간이었으며 무한하거나 형태가 변하더라도 영원히 존재하는 그들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무의미했다. 신들에게 그들의 세상은 그들의 것으로 그들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세상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소설이 등장하였고 소설에는 인간이 등장하였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존재로 인간의 존재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선과 같은, 선조적인 것이다. 따라서 서사시에는 없던 시간이라는 개념이 소설에는 생기게 되는데, 시간에 집착하고 시간에 붙들려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만 보아도 과거 사람들에게 신이 차지했던 자리를 이제는 시간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구 분

서사시

(신화, 신들의 이야기)

소설

(인간의 이야기)

시간성

무시간성, 순환적

시간이 존재, 선조적

주인공

주로 신, 영웅

주로 인간 (문제적 인물)

 

 서사시가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무시간성을 드러낸다면 소설에서는 서사시의 무시간성과 대응될 수 있는 개념으로 기억이 필요하게 되었다. 어떠한 일이나 존재는 이제 시간이 지나면 변해 버린다. 이미 지나간 것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은 기억해야한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도 작가는 본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해내는 과정은 창조적이다. 즉 창조적 기억인 것이다. 김윤식은 ‘기억의 도움을 받는 회상의 형식, 이것만이 소설의 순수혈통이라는 것. 손재주나 꾸며서 만들기를 떠나, 본질적인 소설의 장소에 들어가겠다는 결의’가 보였다는 점에서 『그 많던 싱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윤식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또 다른 측면에서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억에 의지한 글쓰기는 ‘자아와 세계, 내면성과 외부’라는 구분으로 인한 인간 영혼의 찢김을 초극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근대사회에 이르러 인간은 그 가치가 인간 자체의 가치 이외에 시장가치(교환가치)로 구분되어 있어 그 차이로 인한 갈등 때문에 영혼의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더 쉽게 예를 들면 영수는 영수 자체로 가치가 있는데 그의 외모나 능력에 따라 다른 가치가 주어지고 그 두 가지의 가치 차이로 영수는 상처를 입는다는 말이다. 영수가 이러한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다른 사람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근거한 주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영수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꼭 인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관련있는 사물, 주로 애정을 부여한 사물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그 많던 싱아..』에서 ‘싱아’가 작가에게 그러한 존재이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p77)


 요즘도 싱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는 독자 편지를 받으면 내 입안 가득 싱아의 맛이 떠오른다. 그 기억의 맛은 언제나 젊고 싱싱하다. (다시 책머리에)


 이 대목에서 나타난 ‘싱아’라는 풀은 경제적 가치로는 하찮지만 박완서에게 있어서 ‘싱아’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그 때의 ‘싱아’는 이제 박완서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즉, 기억을 통해 그녀는 ‘싱아’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과 그와 관련된 기억을 두고 김윤식은 ‘절대로 남으로 하여금 받아쓰게 할 수 없는 것. 스스로, 직접 써야 하는 것. 그만이 쓸 수 있는 것’5)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억의 도움 입은 회고의 형식으로 나아가기, 그것만이 순종소설이라 함은, 다시 말해 자아와 세계의 분열을 초극하는 방식으로써의 소설이 존재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오직 기억 속에서 이 분열을 통일해 보이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또한 소설의 특질이라 할 수 있는 묘사가 기억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고, 이 기억의 대상(싱아)으로 말미암아 작가는 필연적으로 묘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묘사를 떠나면 소설이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기억에 의한 것만이 묘사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억만’에 ‘순전히’ 의존한 글쓰기로 『그 많던 싱아..』가 씌어졌던 것이다.

 이런 근거로, 김윤식은 ‘작가 박완서는 거인이었던 것,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베끼기 글쓰기와 같은 순종을 위협하는 극단적 현상들에 대한 정면의 도전, 순종혈통 지키기의 첫 번이자 마지막 보루가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4.문예사조로 바라본 박완서 소설

 1)모더니즘

 박완서의 소설은 모더니즘 소설의 모습을 띈다. 모던은 예술과 관련하여 말할 때에는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부터 서구에서 시작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운동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대적 구분만이 아니라 ‘독특한 종류의 상상력, 즉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상상적 전체를 이루는 주제와 형식, 창작의 조건과 유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모더니즘은 다른 사조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① 전통과의 단절을 들 수 있다. 리얼리즘에서는 ‘사람과 사물을 작가의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친 그대로 솔직하게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술이라는 것은 우주나 자연의 모습을 정확하게 비추어내느냐에 따라 작가의 위대성이 판가름 난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삶의 실재를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따라서 그 정체를 결정할 수 없고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예술 매체로써 자연이나 우주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실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창조해 낸다는 것이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이다.

② 주관적 경험과 개인주의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집단의식 보다는 개인의식을 훨씬 더 높이 여긴다. 모든 가치와 진리가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지니지 않는 다면 예술가는 주관적 실체 세계에서 모든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개인의 창조라는 것이 모더니즘의 기본입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더니즘은 다분히 낭만주의의 사생아로 일컬어진다.

③문학의 독자성과 자기 목적성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문학은 비공리적인 문학만을 위한 문학이다.

④실존주의적 인생관

 삶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나 태도를 가리킨다. 개인과 사회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긴장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나 개인 쪽의 연민의 편에 손들어 준다.


 2) 모더니즘을 넘어서

 이러한 일반적인 모더니즘의 모습을 띄지만, 모더니즘의 한계를 박완서는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 듯하다. 박완서 소설은 삶의 모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재현이며, 그 삶의 언어화라는 점에서 리얼리즘과 반대되며, 삶의 실재를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이미 환경에서, 우주에서 창조된 내면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언어화시켜 만들어 내었다. 박완서의 소설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리얼리즘을 비판하는 모더니즘이면서 다소 낭만주의 성격을 띌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또한 모더니즘은 구체성을 잃고 추상에 함몰되어 일상과 유리된다. 인간의 평범한 감흥을 삭제하는 엘리트주의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에 비해 박완서의 문학은 엘리트를 자처하기 보다는 문학에 자신의 삶을 녹이면서 삶에 대한 철저한 자기 기준을 보여준다. 난해성과 추상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과 유리되지 않았다. 기준을 와해시키고 자유를 누리려던 모더니스트들이 다시 <거대한 장인 의식>에 빠질 때 박완서의 소설은 우리가 소설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5. 우리가 바라보는 소설

 1) 박완서의 작품은 소설인가.

 박완서의 소설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최초의 물음으로 돌아가 자전적 성격을 가진 그녀의 작품이 소설인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것이든 갈래라는 것에는 어름한 지점이 있기는 하나 엄연히 소설이라는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 있으므로 우선 그것이 소설이어야 우리가 논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명희6)는 『그 많던 싱아..』와 『그 남자네 집』과 같은 종류의 작품을 자전적 소설7)이라 지칭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전적 소설은 자서전처럼 주인공과 저자, 화자가 일치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의 차이를 자전적 소설은 자서전과 달리, 기억의 취사선택이 있다는 것과 온전한 기억의 재현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허구적 글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에 두고 있다. 즉, 작품의 서술대상인 과거의 ‘나’와 서술의 주체인 화자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나(박완서)’ 사이에는 수십 년간의 세월의 심연이 있어 기억의 재현이 불가능하며 허구적 글쓰기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모든 현실이 인간이 인식함과 동시에 그 온전한 현실과는 다른 것이 되며 그 인식된 기억이 글로 풀어져 나오면서 다시 최초의 현실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간과한 오류로 생각된다. 게다가 그 글을 독자가 읽고 인식할 때는 독자의 관점으로 인해 그 글과는 다른 기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어떠한 현상이든 그것이 글(자서전이든 소설이든)로 표현될 때에는 인간의 사고를 거친 ‘의미화 과정’과 ‘허구적 재구성’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억의 취사선택과 허구적 글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기준으로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을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일반적인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하는 듯하다. 주로 책의 내용이 단순 시간 구성이나 특징적인 사례를 기준으로 단편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자서전의 구성과 잘 짜인 플롯과 같은 소설적 구성을 가진 자전적 소설의 차이가 그것이다. ‘그 남자네 집’의 경우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이 있다는 것에서 그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자서전과 다른 문학작품이 주는 감동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또한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애매모호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해서 작가의 입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박완서가 『그 많던 싱아..』를 두고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사람들은 자서전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사실 그만큼 『그 많던 싱아..』는 『그 남자네 집』에 비해 소설처럼 잘 씌어진 자서전이라는 느낌을 강력하게 주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갈래를 규정짓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 많던 싱아..』에 있어서 이 문제의 결론은 작가에게 달린 것이라고 본다. 『그 남자네 집』을 두고 작가가 소설이라 딱 잘라 말했던 것처럼 그녀가 소설이라고 했기에, 우리는 소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허구성으로 살펴본 소설

 소설은 허구라는 통념, 그리고 소설과 소설이 아닌 것을 가장 잘 갈라 주는 기준의 하나는 곧 허구성(fictionality)의 유무라는 고정관념은 매우 넓고도 깊이 퍼져 있다. 결국, 소설과 허구를 동일시하여 보는 태도이다. 허구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로망스(romance)의 작가들은 ‘공상’이라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으며 근대 리얼리즘 이후의 작가들은 ‘상상력’의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로망스 작가들은 현실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일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을 허구화로 생각했던 것이며 노블(novel)의 작가들은 ‘있을 법한’일을 그려내는 것으로 허구의 개념을 정리하였다. 리얼리즘 이후 소설이 자리 잡히기 시작하면서 ‘현실감을 보다 효과 있게 전달하기 위한 구성 방법’이라는 방향으로 조정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현실감이란 말은 ‘사실의 재생’이라는 뜻 이외에 ‘진리와 진실의 전달’이라는 의미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근대 이후에 들어들면서 픽션은 ‘진리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서술 요령’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소설과 허구를 동일한 것으로 보려는 태도에 비해, 또 픽션을 소설의 대명사로 서슴치 않고 부르려는 태도에 대해 체계를 갖추어 반론을 편 이론가로 누구보다도 프라이(Northrop Frye)를 뽑을만하다. 그는 ‘소설 중심의 허구개념’을 코페르니쿠스식 관점으로 ‘허구 중심의 소설관’으로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소설은 허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즉 허구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야만 우수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수설작품에 대한 우열의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프라이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심인 ‘허구적인 것’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직접 교감이 중시되는 ‘주제적인 것’으로 나누었다. 한 마디로 일반적이며 정통적인 의미의 소설은 주제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이 잘 조화되는 자리에 서는 것이라 하겠다.8)

 결국 박완서의 소설은 허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제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 사이의 줄타기 위에서 주제적인 것으로 치우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완서에게 있어서 허구란, 세계를 인식할 때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성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진실을 전달할 때 허구성을 배재하고 있다. 허구성의 배재가 현실을 더욱 현실답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인간의 사고를 거친 ‘의미화 과정’과 ‘허구적 재구성’조차도 세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3) 소설 논쟁. 무엇이 좋은 소설인가?

 김윤식은 박완서의 소설을 극찬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하고 있다. 현대 소설의 흐름이 포스트 모던하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진솔한 박완서의 소설을 한줄기 빛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부정적 측면은 SF스러운 것, 베끼기, 장르해체론 등이다.9) 하지만 현대 소설 비평에서 작가와 작중인물간의 거리 조절은 그 소설 작품성 논의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이다. 작가와 작중인물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긴장감을 유지해야 재미있고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인데10) 그렇다면 박완서의 소설은 작가와 작중인물이 동일하므로 작품성이 떨어지는 소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작가와 인물간의 거리라는 것은 작품에 따라 상대적 차이가 있으나 결국 그 기준은 독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될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그 거리의 포인트는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삶인가 아닌가 하는 궁금증에 있다. 아무리 기억에 의지한 글쓰기라도 일단 글로 표현했다는 것에 일차적인 거리가 존재하며 글로 표현하는 순간 의미화 과정에 의해 기억이 재구성되기 때문에11) 독자는 작품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작가가 재구성한 허구적인 것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와 결부된다. 이러한 내용은 『그 많던 싱아..』에도 해당하지만 ‘그 남자네 집’에 더 적용 된다고 볼 수 있다. 첫사랑을 회상하는 소설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이것이 진실일까 하는 물음과 함께, 이미 할머니가 된 작가의 옛 사랑이야기를 엿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박완서 소설만이 가지는 작가와 작중인물간의 긴장감이다.

 그런데, 반면 작가와 인물의 거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은 진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진짜?”라는 말이라는 농담도 있다. 감동적인 내용이 현실이라는 것은 분명 독자에게 어필한다. 영화에서도 관객의 감동을 위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작가가 처음부터 이것은 나의 이야기라고 밝히고 그 결과물이 참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작품에서 삶과 글이 일치된 진솔함을 맛보게 되고 꾸며낸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점이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박완서 소설의 진정한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완서의 소설은 비록 지금의 포스트 모던한 흐름과는 반대되는 모더니즘의 성향을 가진 소설이나 그 흐름 속에서도 우뚝 서서 시대사조를 넘어서는 그녀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녀는 세계를 자신의 삶의 세계로 만들어 하나의 주체적 시각으로 완성시켰다. 완성된 주체로서의 자격을 가지면서도 다양하고 해체적인 현재의 시대에서 다른 객체들과도 나란히 배열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완서의 소설은 시대에 따른 소설의 흐름 위에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것으로 문학이라는 큰 틀에서 다른 소설(텍스트)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이 변화해 왔다. ‘무엇이 소설인가?’라는 물음은 분명 중요한 물음이긴 하나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고 재미있는 소설이고 무엇이 안 좋고 재미없는 소설이냐’라는 물음일 것이다. 김윤식이 포스트모더니즘보다는 소설의 근원적인 모습에 더 애착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는 개개인의 독자로서 각자의 소설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세나, 큰 흐름, 유행에 따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별적인 독자들의 진솔한 가치판단이 좋은 소설을 가려내고 그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종합되어 하나의 사조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탐구하고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박완서의 소설은 포스트 모던적 흐름의 틈바구니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지켜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도움 받았습니다>

*[기억과 묘사] / 김윤식(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그 많던 싱아..』에 수록된 작품해설

*[박완서의 자전적 근대 체험과 토포필리아]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중심으로 / 송명희

  / 2003

*『소설원론』 - 조남현 / 고려원 / 1982

*『문예사조사』 - 고전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 이선영 엮음 / 민음사 /2005(개정판)

*『박완서 소설연구』- 분단의 시대경험과 소설의 형식 / 이선미 / 깊은샘 / 2004


1) 인터넷 서점 인터파크에서 필요한 부분은 갈무리 하고 재구성.


2)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올린 감상평에서 필요한 부분을 갈무리 하였다.


3) 동아일보 - 권기태 기자 (2004-10-20)


4) 쿤데라. 체코 출신의 작가. 덧붙여 칼 차페크(체코 작가)는 ‘자기 자신의 일을 지껄이는게 싫어서 시를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그의 소설이 자기 자신의 일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포크너는 ‘나는 인간으로서는 역사로부터 말살당한 자이고 싶다’라고 했는데 인간이 아니라 이는 작품으로만 남겠다는 뜻이다.


5) 작가 헤밍웨이는 이것만이 소설이라고 말했다.


6) 박완서의 자전적 근대 체험과 토포필리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먹었을가』를 중심으로 / 송명희 / 2003


7) 자전 소설, 자서전 소설과 같은 말이다.


8) 문예사조사 -고전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이선영 엮음/ 민음사 / 2002


9)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캐비닛』- 김언수

  형식주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론’을 두고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    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라고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능력 속에 이 작가의    자질이 감추어져 있어 보인다. _김윤식(문학평론가)

  포스트 모던한 소설로 평가받는 캐비닛에 부정적이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그가 무조건적으로 포스    트 모던한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10) 포스트 모던한 정이현의『달콤한 나의 도시』는 작가와 작중인물간의 거리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을 받고 있고 작가도 그것을 작품 마지막장에 드러내고 있다.


11) 작가도 상상력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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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조 : 박종승 성휘 정원

by 소담 | 2008/05/14 09:10 | 작품을 감상하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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